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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책

[2019 김승옥 문학상/편혜영의 어쩌면 스무 번]

호랑구야 2020. 9. 24. 09:00

으스스하다.

괜히 주변을 의식하며 둘러본다. 어제까지 괜찮았던 잠자리 모양이 불편하고 무언가 숨겨져 있는 것 같아 불안하다.

나에게 '스물'이란 단어가 젊음과 싱그러움으로 인식되었는지, 제목만 읽고서는 가벼운 이야기일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어쩌면 스무 번, 제한을 두는 의미에 여러 가지 사실이 더해져 상상을 할수록 으스스해진다.

간단하게 줄거리를 정리하자면, 한 부부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모시고 시골로 요양을 온다. 실은 정신이 피폐해진 것은 노인뿐 아니다. 아무 때나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것을 멈출 수 없는 남편과 호흡곤란을 겪는 아내는 지쳐있다. 삼키로 떨어져 사는 이웃이 이삿날 들러 이런저런 얘기를 전해주며 부부의 사정을 살핀다. 이웃이 경고해준 옥황상제는 피했지만, 보안 회사 직원들은 집안 자유롭게 들어온다. 치매 노인을 돌보는 일은 힘들지만, 형제에게 다달이 받는 돈이 유일한 수입원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떨어질 재산은 빚을 청산하고 나면 적은 액수이다. 남편은 자신이 '어쩌면 스무 번' 정도 꽉 찬 둥근달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부부의 마음속 불안함을 건드린 보안 회사와 계약을 하고, 작은 방의 아버지는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눈앞에 있는듯한 상세한 묘사로 작품에 깊게 이입하게 한다. 떨어져 있던 사실이 모아졌을 때 떠오른 여러 생각들이 책 속 현실을 싫게 만든다. 여러 갈레 중 가장 덜 잔인한 것이 무엇인지 상상해보다, 그 무엇에도 즐거운 얘기는 없다는 사실에 우울하다.

여러 번 읽고서 가장 '소설을 쓴' 생각은, 보안 회사의 모회사가 옥황상제와 관련이 있다면 하는 것이다. 어디서 5분 안에 출동을 할 수 있을까? 폐쇄적 장소에서 종교는 공권력보다 훨씬 가깝고 아프다. 

결코 다르지 않은 두 접근에 전혀 다르게 반응한 부부의 행동을 읽고 있으면, 마치 미국에서 만든 공포영화 속 주인공을 보는 듯 해 불안했다. 좀 더 경계심을 가졌으면 하고 의심하길 바랬지만, 가장 둔한 건 나였다. 그들이 숨기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고 행동에 한계를 두고 상상했다.

더운 날 다시 읽어야겠다. 당분간은 추울 테니 자물쇠를 걸어두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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